2015.09.22

일상의 편린 2015. 9. 22. 01:49

#1. 늦바람

늦바람이 무섭다고들 한다. 올해 내 모습에 딱 맞는 표현이다. KBO 야구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해 가을, 가을이었지만 찬바람이 강했던 어느 날 뜨뜻한 안방에서 한국 시리즈 경기를 보시던 아버지 곁에서 처음 야구를 봤다.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홈런 등 캐스터가 쏟아내는 생소한 야구용어를 아버지에게 물어가며 야구를 봤다. 당시에는 심장이 쫄깃해지는 투수전의 재미보다는, 관중들이 환호하고 캐스터가 열변을 토하는 타격전의 재미에 더 민감했던 거 같다. 속된 말로 빠따가 터지지 않는 경기는 재미없는 경기였다. 그렇게 나는 야구를 알게 되었다.

이후에도 종종 야구를 보긴 했지만 단편적인 경기만 봤을 뿐 정규 리그와 포스트 시즌 등의 체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경기 운영방식에 대해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정도가 지나서인 20살, 반수생활을 하면서 였다. 어릴 때보다 야구에 대해서는 더 잘 알게되었지만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삼성과 경기하는 상대팀만 응원할 뿐이었다. 나는 야구에 대해서 잘 알지도, 그렇다고 잘 안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정도의 '흥미'만 가진채 가끔씩 스코어만 확인하는 프로야구 관찰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야구팀을 정해서 응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야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매일 그 팀의 경기를 챙겨보는 것은 기본이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그 팀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 읽고 또 선수의 이력과 정보를 찾아보며 게임의 이해도를 높였다. 또래에 비해 늦게 알게된 야구의 재미에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 팀이 어느 팀일까? 그 팀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위권을 맴돌고, 선수 장사를 한다는 오명을 갖고 있었던 넥센 히어로즈다. 현재 감독을 맡고 있는 염경엽 감독이 넥센 히어로즈에 부임해 온 뒤로 팀은 괄목할 만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2013년에는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2014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히어로즈, 그 이름에 맞게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영웅의 서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힘든 작금의 시대에, 마치 넥센 히어로즈는 개천에서 솟은 용같다. 어려운 시절, 철없던 시절을 거쳐 멋지게 성장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나는 늦바람이 불어 야구에, 넥센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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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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