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학교는 아카라카때문에 시끌벅적했다. 엎어진 캠퍼스에도 봄은 찾아왔고, 좋은 5월의 봄 하늘 아래 축제 역시 어김없이 찾아왔다. 다소 삭막했던 캠퍼스에 파란 옷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 둘 몰려들면서, 푸른 빛을 찾아가는 캠퍼스 곳곳의 나무들처럼 캠퍼스에는 활기가 돌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활기찬 무리 속에 스며들지 못했던 나는 대학로로 향했다. 이틀 전 이벤트에서 당첨된 뮤지컬 '덕혜옹주'를 보기 위함이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그 분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고3 때였다. 유독 영상수업을 즐겨하시던 한 선생님이 그 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여준 것이 계기였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국권 피탈 이후 덕혜옹주가 겪었던 고난과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혼란의 역사 속에서 마지막 황녀로서 그녀가 겪었던 어려움과 설움이 느껴져 정말 안타까웠다.
뮤지컬 '덕혜옹주'에서는 황녀로서의 그녀보다 한 여인,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덕혜를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외로웠던 덕혜, 원치 않는 정략결혼이었지만 차츰 마음을 열고 가족을 꾸리고 살기를 바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그녀의 병세는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덕혜의 딸인 정혜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는 덕혜의 병을 이유로 만나지 못하게 한다. 서로를 그리워는 덕혜와 정혜의 모습은 정말이지 안타까웠다. 더욱이, 극 중 두 역할을 한 배우가 맡아서 연기하다보니 절대로 두 주인공이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극의 후반부에 어머니 덕혜가 머물고 있는 정신병원에 찾아간 정혜가 어머니를 그리며, 또 덕혜는 정혜를 그리며 서로에게 노래를 부르는 -맞다. 한 배우가 두 목소리로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장면은 안타까움의 절정이었다.
가족. 덕혜나 그와 정략결혼을 한 다케유키 모두 평범한 가족을 원했다. 딸 정혜는 항상 아버지, 어머니와 소풍을 가길 원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저 평범한 가족, 평범한 삶이었을게다. 그러나 불행한 역사적 상황은 덕혜를 병들게 했고, 다케유키는 그런 덕혜를 버렸다. 다케유키는 알았을까. 덕혜를 놓아버렸던 그 순간, 그의 딸 정혜마저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엄마 덕혜를 찾던 정혜, 아빠의 장례식에서 어린 날을 추억하며 부모님을 찾던 덕혜가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객지에 나와 홀로 생활하고 있는 요즘, 가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뮤지컬이었다.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연세대학교 총동아리연합회 'Between'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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