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면 분명 어딘가에는 기록, 즉 로그(Log)가 남는다. 가장 쉬운 예로는 인터넷이다. 웹브라우저를 통해서 한바탕 인터넷을 쓰고나면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찾기 위해서 어떤 검색어를 통해서 어느 웹페이지에서 방문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는다. 일차적으로 내 PC/모바일 기기에도 남고 내가 방문한 사이트의 서버에도 기록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에 연결하지 않고 PC/모바일 기기를 사용해도 단말기 상에서 이루어진 활동 역시 기록이 남는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께름칙하다. 밖으로 한 번 나가보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하나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하고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서 커피로 한 잔 하면서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쉽지만 PC 앞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라도, 카페에 자리잡고 앉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기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이동하는 모습은 어디인가에 있는 CCTV에 의해서 기록이 되고 심지어 카페 안에서도 CCTV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커피 값을 카드로 계산하는 순간 나는 또 한 건의 기록을 남긴다. 친구에게 보낸 카톡 역시 어딘가에 기록을 남긴다. 물론 그 기록들은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공개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록된 그 자료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헨젤과 그레털의 빵 조각처럼 내가 흘리고 다닌 기록들을 모아보면 나조차 몰랐던 내 자신에 대해서 더 잘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록들은 하루에도 측정하기 힘들정도로 많이 쏟아진다. 셀 수 없이 많은 기록들을 모아 분석하여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이 '빅데이터 분석'이다. 기업 단위에서는 이 분석을 토대로 얻은 결과물로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하고, 정부 단위에서는 정책을 입안할 때 근거자료로 삼기도 한다. 덕분에 과거 수요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을 때 발생했던 질적 측면의 수요-공급 불일치가 기록 자료를 활용하면서 완화되고 있다.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불일치로 인해 발생했던 사회적 비용들이 꽤나 감소할 수 있을테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숨이 턱 막힌다. 내 모든 온/오프라인 활동들이 기록된다고 생각하면 께름칙하다. 기록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유쾌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는 내 모습이 찍힐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신상과 관련된 정보들이 암호화되지 않고 기록되고 있을 수도 있다. 또 과거 철없는 시절에 싸질러 놓은 글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민감한 정보나 잊고 싶은 흑역사가 기록되어 어딘가에 남아있다면, 기억 속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들이 땅 속에 묻혀있는 플라스틱 비닐봉지마냥 남아있다면 어떻겠는가. 언젠가는 그런 기록으로 인해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것들이 디지털 신호로 어딘가에 기록되는 기록의 시대다. 디지털 신호로 기록하는 기술의 발전은 아날로그 감성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내 놓고는 편지를 받았을까, 편지를 읽었을까 속으로 마음졸이던 시대도 있었다. 혹시나 편지가 배달되다가 빠지진 않았을까 걱정을 하다가도 답장을 받거나 편지를 잘 받았다는 전화라도 한 통 받으면 그 간의 걱정이 감동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아주 옛날까지도 갈 필요 없다. 어차피 나도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으로만 돌아가도 된다. '편지' 대신 '문자메시지'로 바꿔 생각해봐도 얼추 비슷할게다.) 지금은... 손으로 편지를 쓰기보다는 이메일, 카톡으로 소식을 전한다. 그렇게 전하는 소식은 언제 보냈는지, 또 받는 사람이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과거의 간절함이나 애틋함은 덜해지고 혹시라도 '읽씹'을 당한다면 그 풋풋한 감정 대신 다소간의 분노와 의심, 실망이 들어선다.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 디지털 기기와 거리를 두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는게 쉽지도 않다.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감성을 잃어버리긴 싫다.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면서 종종 손으로 글을 쓰고, 가끔은 만년필을 꺼내어 손글씨를 연습해 보는 것으로 아날로그와 조금 더 가까워지려는 몸부림을 부려본다.
....쓰고 나니 두서가 없네... 글쓰기 수업 다시 들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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