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분석적 글쓰기]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2011xxxxxx JunTang
헤겔은 국가 철학에서 '절대 정신'인 국가로의 발전 동력으로 '변증법'을 제시한다. 그가 국가 철학을 설명하면서 이용한 변증법적 방법론은 3단계 운동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의 세 단계 구조는 <정립These>에서 <반정립Antithese>으로, 마지막으로 <종합Synthese>의 운동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 후 종합은 또다시 새로운 정립이 되어 이 과정은 그것이 절대 관념으로 종결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 때, 발전의 동력은 각각에 내재하고 있는 모순이다. 발전과정에서는 항상 새것과 낡은 것 사이의 모순이 동시에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역동적인 대립관계의 발전을 일으키고 종합된 국면의 성숙을 일으킨다.
국가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헤겔의 변증법은 개인의 삶을 설명하는 데도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은 그가 갖고 있는 특성을 부정(Negation)하면서 새로운 자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자기 삶의 한 국면에서 갖는 특성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마치, 새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던 알 껍데기를 스스로 깨어버려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나의 사물에 내재한 모순을 부정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변증법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내 삶은 열등감에 휩싸여 있던 과거의 나를 부정(Negation)하고 발전적으로 극복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열등감에 기인하는 소심함<These>과 이에 대립하는 적극성<Antithese>이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새로운 성격과 행동특성<Synthese>을 만들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것들을 분석하고, 프로이트의 흔적론을 빌려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께서는 나를 동네 다른 아이들과 자주 비교하곤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같은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다른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시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를 꾸짖으셨다. 그 비교는 '누구는 달리기를 잘해서 상을 받았다고 하더라.' 혹은 '누구는 혼자서 심부름도 잘 다녀온다더라.' 등 과 같이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웃어 넘길 수도 있는 것들이었지만, 그런 비교가 잦아질 때마다 나는 '나는 왜 저러지 못하지?'라는 열등감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더욱 더 위축되어 성격은 점점 더 소심해져 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잘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보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나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드는 경우가 많았다. 소심한 성격은 내 말과 행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행동에서 결단과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신을 갖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면서 행동하게 되었다. 말수도 적어졌다. 학교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발표하는 것이 싫었다. 내 생각을 발표했을 때, 다른 친구의 생각과 비교되면서 내 생각이 평가절하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한 열등감은 나의 말버릇에도 영향을 끼쳤다. 타인과의 잦은 비교에 의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나는 그 자존심을 세울 심리적 기제가 필요했다. 나는 거친 말을 내뱉으며 가장된(僞) 자존심을 회복했다.
열등감과 소심함으로 점철된 내 어린 시절을 부정(Negation)하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게 된 계기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할 당시에는, 임의 배정된 중학교에서 반편성 자료로 이용할 성적을 제공하기 위해서 모든 초등학생들은 도 단위로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그 시험을 잘 치른 덕분에 나는 내가 배정받은 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항상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오던 내가 남에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것, '수석입학' 타이틀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변하기 시작한 것은 성격과 삶의 태도였다. 혼자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인정덕분에 '잘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물론, 어릴 적과 마찬가지로 비교의 대상에 오르내리긴 했지만 나의 행동이 열등함의 표본에서 우등함의 표본에서 평가 받게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다. 내가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 것처럼 여겨졌고 바람직한 방향인 것처럼 여겨졌다. 학교 안에서 어디를 가든 나를 알아보고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나를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추켜세워 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나는 자신감에 차서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황금기도 한 순간이었다. 자신감에 찬 말과 행동도 잠시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위의 관심은 나에게 족쇄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나를 빛나게 해 주던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모든 사람이 완벽하지 않고 실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수하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두 배, 세 배 비난을 받았다. 단지 그들의 생각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중학교 1학년 말, 같은 반 친구랑 아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나를 성가시게 해온 친구였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그 친구가 나에게 먼저 시비를 걸고 싸움의 원인을 제공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그러면 안 된다.'라는 논리 아래 선생님들과 내 친구들로부터 더 큰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중학교 졸업 후 차석으로 입학한 고등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와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겪었던 첫 번째 부정(Negation)으로 열등감과 소심함에서 벗어나 성격과 삶의 태도 면의 변화는 이루었지만, 타인에 의한 인정(Recognition)이 나에게 족쇄로 기능하면서 말과 행동에서는 완전한 변화를 이루지 못했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다는 사회적 풍조와 더불어 명문대 진학 실적이 고등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예외일 수 없었다. 때문에, 학교 생활의 모든 것이 공부와 성적으로 재단(裁斷)되고, 성공을 위해서는 서울 소재 명문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이 진리로 여겨졌다. 그 '잘못된' 진리에 대한 부모님, 선생님들의 추종은 학생에 대한 집착과 심리적 압박으로 이어졌다. 나 역시 소위 말하는 학교의 '기대주'들 중 한 명이었기에 심리적인 '족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디를 가나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간만에 여유를 갖고 취미 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그 시선은 '공부는 안 하느냐?'라는 압박이었으며,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더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압박이었다. 그 모든 것이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과한' 관심이 큰 부담이었다. 그 족쇄 속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그 족쇄가 느슨해지는 두 번째 부정(Negation)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일어났다. 명문대에 진학하여 사회적 경쟁에서 조금의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나는 학창시절 내내 나를 지켜보던 수 많은 눈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 더 기뻤다.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면서 나는 한결 자유로워졌다. 처음으로 나를 주시하던 많은 시선들에서 자유로워 졌을 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곧 자신감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마주한 상황과 부딪혀 보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학풍과 수 많은 책들 속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보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순간엔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자유롭고 자신에 찬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자아 속에서 열등감의 많은 부분이 상쇄되었고, 그 덕분에 가장된(僞)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사용했던 거친 말 역시 많이 사라졌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설명하는 방법들 중 흔적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살아가면서 인간은 외부 세계로부터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모든 자극은 반드시 정신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르면, "인상이 강했던 자극일수록 그 흔적은 깊이 각인된다. 이 흔적이 무의식에 위치하게 될 경우에는 나의 의지대로 통제하거나 활용할 수 없는 영원불변의 흔적이 되고 이것은 무의식 상태에서도 여전히 정신-신체에 완전한 영향력을 미친다."
나는 어린 시절의 열등감을 많은 부분 극복했다. 하지만, 과거 어린 시절에 열등감으로 인해 겪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은 아직 나의 무의식 속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 흔적들을 마주하지 않고 방치해 둔다면, 언젠가는 그것들에 의해서 내가 다시 휘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그 흔적들을 마주하고 극복해보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내가 더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국가 철학에서 변증법적 발전은 헤겔이 생각하는 최고의 이성인 <국가>에 이를 때까지 지속된다. 나 역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 많은 부정(Negation)을 겪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곧 다가올 새로운 부정을 받아들이고 과거의 흔적을 마주해 자아의 성숙을 도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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