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공원_선유도 공원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꿈꿨던 로망이 하나 있다. 한강변의 잔디밭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잔잔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몸으로 마주해 보는 것, 그것이 내 로망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대학 새내기 때 이 로망을 이룰 수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한 새내기 1학기 종강총회 '보내버리다.' 덕분이었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정말 들떴었다. 종강총회 당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전공 레포트가 있었지만 당시 나는 레포트의 부담보다는 한강변 노상 술자리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20페이지 남짓한 짧지 않은 레포트를 후딱 써서 제출하곤 동기들과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그 때 갔던 한강공원이 선유도 공원이었다. 조금 더 확실하게 하자면 선유도 공원 옆 인근 잔디밭이었다. 술에 눈이 팔려서 옆에 선유도 공원이 있는지도 모른 채 잔디밭에 앉아서 술 마시기에 바빴다. 한강변의 노상음주(?)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인지 한동안 '한강공원 = 술판' 이라는 이미지가 '아주' 강하게 남아있었다.

한강공원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바뀌는 데는 근 1년 정도 걸렸다.
따사로운 5월 초의 봄날.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함께 선유도 공원을 찾았다. 풍성하게 만개하진 않았지만 부끄럽게 고개를 내민 꽃과 '비밀의 색'으로 가득 찬 봄의 한강공원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직접 찍은 사진이 없어서 포스팅에 함께하진 못하지만 설령 사진을 찍었더라도 그 때의 그 느낌을 사진이 제대로 잘 전달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기에 사진을 싣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잠시 물러두련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비밀의 색'을 보고 느끼며 걷고 또 걸어 얼마나 왔을까. 노천 공연장이 있는 곳에 다다랐을 즈음에 봄날의 햇살보다 더 따사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좋은 향수가 있었다. 너무나 좋은 향수였다.
그 향수의 향기를 느끼도록 해 주고 싶었다. 딱 한 사람에게만.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난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먼 곳만 보았고 또 맞지 않는 길을 가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만 지칠 뿐이었다.

나를 찾기 위해서 그 사람도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자기 자신에게 맞는 길이라며 확신하고 걷던 길에서 가시덤불과 세찬 빗줄기를 마주했다.
그래서 그도 많이 지쳤다.

둘 다 먼 길을 돌아서 '지금 이 순간' 비밀의 색이 가득한 선유도 공원 한 켠에 서서 따사로운 햇살을 마주했다. 이미 그의 눈엔 내가 들어가 있었고, 나의 눈엔 그가 들어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2012년 5월 4일 한강 선유도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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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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